박종근(전 김천고 교장)

   개천절 연휴를 맞이하여 모처럼 온 가족이 함께 고향인 경북 상주시에 있는 종산을 다녀왔다. 오랜만에 조상님들의 산소에 들러 무성하게 자란 주변잡초를 제거하고 정성껏 성묘도 했다. 평생 순박한 농민으로 살면서 어려운 살림 형편에도 나에게 대학진학과 교육자의 길을 열어주셨던 부모님 산소 앞에서 감사의 큰절도 잊지 않았다.

   돌아오는 길에 자식들에게 고향의 맛을 보여주기 위해 지역의 유명한 한식집으로 들어갔다. 좋은 날씨와 연휴까지 더해진 터라 점심시간을 한참 지난 시간임에도 식당은 이미 만원이었다. 한참을 기다려 한 쪽 구석자리에 자리 잡고 앉은 지 10분이 채 되지 않아 우리가 주문한 산채백반이 아주 풍성하게 차려졌다. 손님이 워낙 많아서인지 반찬을 미리 준비해 두는 모양이다. 반찬 가짓수를 세어보니 놀랍게도 스물 네 가지나 되었고, 차림 상이 비좁아 다 놓지 못할 정도였다.

   아침부터 아무것도 먹지 못해 몹시 배고팠던 우리 가족은 차려진 순서대로 천천히 먹기 시작했다. 가능한 많이, 골고루 먹으려고 노력했지만 우리 가족 다섯 명이 다 먹기에는 역부족이었던지, 결국 상당량의 반찬이 남았다. 그런데 옆자리에 앉은 손님은 두 사람이 왔는데도, 우리 5인상과 같은 반찬이 진열되는 것이 아닌가. ‘분명 많이 남을 텐데’하며 마음속으로 안타까움을 금할 길 없었다. 나는 이렇게 남은 반찬은 어떻게 하는지 궁금하여 종업원 아주머니께 물어보니󰡒대부분 쓰레기로 버리거나 일부는 가축사료용으로 가져간다󰡓고 하신다.

   정말 안타까우면서도 아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때, 노환으로 반찬을 제대로 만들지 못하시는 이웃 할머니 생각이 났다. 그래서 조심스럽게󰡒우리가 먹다 남은 반찬을 싸 가지고 가도 되겠습니까?󰡓하고 종업원 아주머니께 여쭸다. 그러자 󰡒오히려 쓰레기 치우는 수고를 덜어 주는 일󰡓이라며 반가워하시면서 비닐 봉투에 우리가 남긴 반찬과 옆자리에서 손대지 않은 반찬까지 담아 주셨다. 받아온 반찬을 잘 보관했다가 집으로 돌아온 후 이웃 할머니께 가져다 드렸더니 󰡒앞으로 일주일은 반찬 걱정 안 해도 되겠다󰡓며 매우 기뻐하시는 모습에 나도 기분이 절로 좋아졌다.

   다음 날 우리 가족은 추억이 서린 인근에 있는 유명한 사찰에 들렀다. 맑은 공기를 마시며 수려한 산길을 지나 사찰에 도착하여 경내를 돌아보니, 때마침 스님들이 발우공양(鉢盂供養)으로 점심식사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조용하고 질서 있는 분위기 속에서 죽비소리에 맞추어 한 줌의 음식도 남기지 않고 식사하시는 모습은 참으로 성스러운 광경이었다. 어제 들렀던 식당과 여러 가지로 비교 되었다.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손님 접대는 음식 가짓수가 많아야 하고 배불리 먹고도 남아야 한다’는 것을 당연시하는 잘못된 풍조가 팽배하다. 과연 우리나라에서 한 해 버려지는 음식물 쓰레기가 약 550만 톤에 달한다는 사실을 알고나 있을까? 게다가 그 처리 비용만도 연간 8천억 원이라고 하니, 이제 이런 사치스런 음식문화는 과감히 버려야 함에 틀림없다.

  식탁에 올랐으나 젓가락 하나 닿지 않은 채 곧바로 쓰레기통에 들어가고, 먹기는 먹었으나 절반 이상이 남은 채 버려지는 음식들. ‘나하나 쯤이야’하는 생각을 버리고 ‘나부터라도’마음으로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는 음식문화개선운동을 실천해야『건강 가정, 부강 한국』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사랑하는 친구가 나에게 생일선물로 만들어 준 박꽃 3행시『박꽃처럼 활짝 피어/종일토록 행복 주며/근사하게 영원 하네』처럼 60대 중반인 나도 돌아가신 부모님처럼 시골 초가집에 피어나는 소박한 박꽃처럼 살고 싶다. 우리 모두 건전하고 소박한 식생활을 실천하는 것으로 환경과 건강에 도움 되는 삶을 살아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