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을 맞이하면서

    ‘까치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로 시작되는 윤극영씨의 설날 노래가 생각나는 세밑이다. 색동저고리를 입고 골목길을 깨금발로 뛰어다니며 노래를 부르던 아이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새로 사온 신발과 설빔, 평소보다 푸짐한 먹거리 등으로 설레임과 기대 속에 손꼽아기다리던 설날이 어른이 되면서 돈 걱정이 앞서는 설로 변한다. 손주를 볼 나이가 되면 멀리 떠나있던 자손들이 집으로 돌아올 날이 은근히 기다려지게 된다. 세밑과 설날 풍경도 많이 변했다. 그믐날 야광귀(夜光鬼)가  신발을 신고가면 죽는다고 신발을 숨기고, 잠을 자면 눈섭이 하얗게 쉰다고 버티다가 어느새 잠이 들기도 했다. 복조리를 팔러 다니던 학생들도 없어졌고, 도소주(屠蘇酒)는 이름만 남아 어느 양조장에서 한정 수량으로 판매한다고 한다. 그믐날에는 지난해 미쳐 세배를 드리지 못한 일가 어른들을 찾아가 묵은세배를 올리기도 했다.

    추석이나 설에 국내여행이나 외국여행을 나가는 가족들이 늘어난다고 한다. 그들의 속사정을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살아계신 부모님과 등을 졌거나 형제간에 돈 문제로 다툼이 있는 경우가 십중팔구라고 짐작된다. 나만, 우리가족만 행복하면 그만이고 부모나 형제들과는 관계를 단절하고 사는 사람들이다. 오히려 여행 중에 만나는 사람들과 살갑게 정을 나눈다. 어떻게 사는 것이 사람답게 사는 것인지는 사람마다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에 딱 잘라서 옳고 그름을 말할 수야 없지만 정상적인 삶은 아니다. 미국인들이 야구에 열광하는 이유는 홈(home)으로 들어와야 득점이 되는 경기이기 때문이라고 들은 적이 있다. 핵가족이 우리보다 훨씬 일찍 시작된 서구사회도 추수감사절이나 크리스마스가 되면 귀향 행렬이 우리 못지않다고 한다. 부모형제와 등을 돌리고 살아가는 삶이 즐거우면 얼마나 즐겁겠는가? 그 여행을 통해서 자녀들이 무엇을 배우며 본인인들 속이 편할 리가 없다. 사람은 더불어 함께 살아야하는 존재다. 세상이 변해도 변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고 형식은 변해도 본질적인 것은 변하지 않아야 한다. 제사를 지내지 않더라도 숭조정신은 계승되어야 하고 추석, 설 명절을 통하여 가족애를 다지고, 자기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나는 어디서 생겨나왔고 지금의 나는 어디쯤 와 있으며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할지 자신을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

    고생해가며 고향을 찾는 이유가 무엇일까? 설의 의미와 마음가짐에 대하여 성찰해볼 필요가 있다. 설 연휴를 TV와 마주하고 스마트폰이나 두드리며 보낼 수야 없지 않은가? 친구와 만나 밤늦도록 코가 비뚤어지게 술이나 마시고 고스톱에 목을 매는 짓은 그만 두어야 한다. 설 연휴를 마치고 허탈한 마음과 피로한 몸으로 돌아간다면 무언가 설을 잘못 쇠고 가는 것이다. 어떤 사업가는 사업이 잘 되어 돈이 많이 벌릴 때나 어려움에 처할 때 고향으로 내려와 마음을 가다듬고 간다고 한다. 부모를 공경하고 형제간에 우애롭게 지내는 것이 인간의 기본적인 덕목이다.
김종길 시인의 시 한 수를 소개한다.

                                   설날 아침에
                                                          김종길

매양 추위 속에
해는 가고 또 오는 거지만
새해는 그런 대로 따스하게 맞을 일이다.

얼음장 밑에서도 고기가 숨쉬고
파릇한 미나리 싹이
봄날을 꿈꾸듯

새해는 참고
꿈도 좀 가지고 맞을 일이다.

오늘 아침
따뜻한 한 잔 술과
한 그릇 국을 앞에 하였거든
그것만으로도 푸지고
고마운 것이라 생각하라.

세상은
험난(險難)하고 각박(刻薄)하다지만
그러나 세상은 살 만한 곳

한 살 나이를 더한 만큼
좀 더 착하고 슬기로울 것을 생각하라.

아무리 매운 추위 속에
한 해가 가고
또 올지라도

어린것들 잇몸에 돋아나는
고운 이빨을 보듯
새해는 그렇게 맞을 일이다.
시집 <성탄제>(1969)

                                                                                                 2014-0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