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도봉에서 물한리까지

 길은 사람을 닮고 물 흐름을 닮고... 도대체 길은 언제, 누가 만들었을까 ?

비행기가 날으는 항공로, 배가 다니는 뱃길이 있는가 하면 사람과 동물 ,차들이 다니는 도로가 그것이다. 뿐만 아니라 인생의 갈아가는 삶의 길이 있다.

인류가 등장하면서 이웃과 이웃을 오가기 위해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길, 겨우 한사람이 통과할 만큼 가늘고 비좁은 길이 수많은 세월이 흐르면서 사람 숫자만큼이나 넓어지고 많아졌다.

자동차를 운전하는 사람은 길을 따라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운전석 앞으로 집중된 기호의 힘으로 그 체계에 따라 이동하는 것이라고 착각을 한다.

그러나 길이 막힐 때는 자동차에 딸려 있는 기호 체계는 망각하고 길을 욕하고 탓하기 일쑤다. 그럴 땐 길이란 생략되거나 단축되거나 질러 가야할 대상인 것뿐이다.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길은 당연히 있어야 하는 존재일 뿐이다.

옛날 우리가 어릴 때는 하루를 걸어야 하는 먼 길이라도 일 년에 한두 번 반드시 외가나 고모님 댁엘 찾아 정을 나누었다.

그 먼 길을 걸으며 길의 너비와 길이를, 그리고 험하고 순함을 몸소 체험하면서 걸어가 며칠 밤을 보낸 뒤 돌아오곤 하던 길, 그러나 지금은 차로 이삼십 분만 달려도 가는 곳을 한 번 찾기가 힘들게 된 것은 무엇 때문일까 싶다. 언제든 가고 싶을 때, 빨리 갈 수 있기 때문에 오히려 그 길을 가지 않는지도 모른다.

18세기의 지리학자 신경준은 조화론적 사유의 바탕위에서 국토인식을 체계화하였다. 그는 백두대간의 흐름을 국토의 뼈대로 세워놓은 길을 세워놓은 것이다.

 그는이렇게 말하고 있다. 「무릇 사람에게는 그침이 있고 행함이 있다. 거침은 집에서 이루어지고 행함은 길에서 이루어진다.」

맹자는 말하기를 인(仁 )은 집안을 편하게 하고 의(義 )는 길을 바르게 한다고 말하고 있다. 길이란 본래 주인이 없기에 그 길을 가는 사람이 주인인데 어떻게 된 셈인지 요즈음은 길 값을 받는 봉이 김선달이 생겼으니 참 희한한 세상이다.

맹자는「길을 가는 일은 행함이다.」라고 말했는데 즉 길의 의로움은 집의 어짊에서 출발하여 길의 어짊으로 돌아온다고 덧붙여 설명까지 하고 있다. 때문에 집에서 길로 나가는 아침과 길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저녁은 신선하고 새로워지게 마련인데 요즈음은 너무나도 잘 만들어진 도로를 달리고도 짜증과 고통으로 얼룩지는 일이 많다.

그런데 이렇게 길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신선하고 새로운 지혜를 안고 올 수 있는 좋은 길이 하나 있어 여기에 소개할까 한다.

길게 쭉 뻗은 고속도로는 달리는 속도에 의해 길이 모조리 증발되는 느낌을 받게 되어 길의 참의미를 잃어버리게 된다. 길의 참 의미를 체험하고 그 진면목을 만끽하려면 삼도봉을 찾으면 된다.

느리고 질긴 도마령 옛길, 산의 위엄을 피해가면서도 유순한 자리를 굽이치면서 모든 산간마을을 지나가는 낭만이 서려있는 길이다.

산길,물길, 들길, 오솔길, 마음의 길...... 무수히 많은 길들이 있지만 어느 것 하나 쉬운 길은 없다. 간혹 낭만의 길이 있긴 하지만 어느 길이나 고행과 수난이 따른다. 그저 바람이 쉬어가는 대로 구름이 머무는 대로 쉬엄쉬엄 따라 가는 것이 길을 걷는 자의 자세다.

경북 김천과 전북 무주, 충북 영동군을 경계로 하는 삼도봉, 경남 거창에서 충북 영동 쪽으로 소백산맥을 넘어가는 우두령과 나제통문 쪽에서 영동 쪽으로 소백산맥을 넘어가는 도마령을 통하는 백두대간의 중허리를 남북으로 넘는 길이다.

이 고갯길 사이사이에서 백두대간은 대덕산, 민주지산, 석기봉, 삼도봉과 거기서 흘러내리는 수많은 봉우리들의 첩첩연봉을 이루고 있음을 발견하는데 백두대간의 능선들을 따라 수많은 길이 끊어질 뜻, 끊어질 듯 굽이굽이 돌아나감을, 신비스럽고 경이로운 출렁거림으로 내려다볼 수 있다. 산맥을 넘어가는 길들은 산의 가파른 위엄을 향해 정면으로 절대로 달려들지 않는다.

그 수많은 길들은 어떠한 산봉우리도 마주 넘지 않고 어떠한 산곡대기에도 오르지 않으면서도 묘하게 돌고 돌아 고갯마루에 이르러 마침내 모든 산봉우리들을 눈 아래 둔다.

소백산맥을 넘어가는 길은 골과 골을 휘돌아 흐르는 계곡물의 표정을 닮고, 큰 강의 하류를 따라 넓어지는 세계로 나아가는 자유의 완만함을 본다.

경북 김천 부항에서 삼도봉을 넘어 충북 영동군 황간면 물이 차가운 마을, 물한리로 내려왔다.

산간마을은 눈 속에 고요히 엎드려 있고 눈 덮인 지붕 처마 밑에는 옥수수 다발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산길에는 이따금씩 멧돼지를 좇는 사냥꾼들이 눈에 들어온다. 이렇게 산길은 산을 피하면서 산속에 점점이 박혀 있는 산간 마을 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건너뛰지 아니하고 다 챙겨가는 착하고 어진 모범생이다.

어두워지는 산은 오히려 무서웠고 우리를 애타게 기다리는 민박집과 어둠속으로 사라지는 길을 두고 어쩔 수 없이 인간이 만들어 놓은, 가로등 불빛이 환한 아스팔트길을 통하여 그러나 사랑과 인(仁)이 깃들인 집으로 돌아왔다. 

                                                                           이우상 /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