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에 외가가 있는 부산으로 가서 태종대의 싯푸른 바다와 수평선을 보면 가슴이 뛰었다.  외할아버지가 날씨가 좋은 날에는 이 곳에서 대마도가 보인다고 하셨을 때에 나는 언젠가는 대마도, 아니 일본본토에까지 가 보리라 마음먹었다. 그 후 대학진학으로 서울로 올라갔고 가까운 바다를 찾아 인천 월미도에 갔을 때에 나는 월미도라는 낭만적인 이름에 도무지 걸맞지 않은 흙탕물 바다를 내려다 보며 부산바다를 그리워 하였다. 같은 바다인데 왜 그리 다른 모습이던지.

나는 동해바다가 좋다.

'바다를 보면 사바세계의 모든 희로애락, 집착증오가 일시에 없어진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가 무슨 영원불멸의 반석이 아니고 우주라는 공간에 흩어져 있는 별들의 하나이며 지구전체가 허공에 떠 있는 허무한 존재임을 새삼스레 느끼게 된다. 명예, 금전, 호악에 악착하여 콩알처럼
오그라진 심장이 다시 기를 펴고 부드럽게 고동을 치기 시작한다'

그래서 나는 이 글을 좋아한다. 구룡포의 어느 시골초등학교 교장을 장인으로 둔 친구 덕분에 그 학교에서 친구들과 여름 이틀을 보낸 적이 있다. 싯푸른 동해를 앞에 두고 울창한 송림까지 있는데도 관광지가 아니라 적요하기까지한 풍경이었다. 우리는 그 곳에 매료되어 그때까지 적립한 계금을 털어 그 학교 옆에 신축하는 16평 연립을 계약하였다. 그 집은 도로에서 바다쪽에 면해 있는데다 바다를 향한 조망을 위하여 바다쪽 벽을 온통 유리로 만들어 안방에서 바로 바다를 내다보게 한 것이 마음에 들었다. 창문을 열어 젖힌 채 안방에 누워 있으면 밤새도록 파도소리가 귓전을 간지럽혔다. 파도가 휘몰아 칠 때에 바다를 내다보면 큰배를 타고 바다로 나아가는 환상에 사로잡히기도 하였다. 집 바로 아래쪽의 조그만 언덕을 타고 내려가면 갯바위가 있고 그 중에는 몇 사람이 앉을 수 있는 넓이의 것도 있어 친구들과 그 위에서 해 저무는 바다를 보면서 술판을 벌이기도 하였다. '한마음'이 부른 '갯바위'라는 노래를 좋아하게 된 것도 이 곳 때문이다. 가까운 곳에 전복죽집이 있어 나로서는 더욱 반가왔다. 전복은 사람체질에 따라 다를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숙취해소에 그만인 음식이다. 과도한 음주로 내상을 입었어도 주말에 전복죽 한 그릇이면 깨끗이 치유되곤 하였다. 소라알갱이 몇 개 넣고 전복죽이라 우기는 다른 곳의 전복죽과는 달리 이 곳은 굵은 전복살이 오득오득 씹히고 색깔도 전복내장을 넣어 누르스럼한 것이 보기만 하여도 식욕이 생기게 한다. 거기에다 갖은 해산물 젓갈을 넣어 잘 삭힌 김치. 아...침 나올라 하네.주말에 그 전복죽집에 가야겠다

                                                                                  필자 :  이인구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