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만추의 계절이 오면 나는 지금의 나를 있게 한 소중한 추억이 생각난다.

박종근(전 김천고 교장)

초등학교 1학년 때 가을빛이 아름다운 들판에서 동네 소꿉친구들과 깡통불놀이를 하다가 잘못 던진 횃불이 짚들을 쌓아놓은 곳에 옮겨 붙어 불길이 타오르기 시작하였다. 나는 놀라고 겁이 나서 두발로 밟아서 불을 황급히 끄려고 하였다. 다행히 30여 분간 친구들과 같이 급하게 불을 끄고 도망쳐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와서 조금 있으니 왼쪽 바짓가랑이가 불에 타서 다리가 아파왔다. 놀란 어머니께서 바지를 벗기고 보니 왼쪽다리 옆이 불에 타 살갗이 물렁해지고 심한 화상을 입게 되었다. 그 치료로 인해 약 2개월을 학교에 가지 못하였다.

  다행히 의사님과 부모님 덕분에 큰 흉터가 남았지만 2개월 후 학교에 갔으나 담임선생님께서 ‟너는 학교에 일곱 살로 일찍 입학했고 결석도 많으니 내년에 1학년을 한 번 더 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셨다. 나는 막 울면서 ‟친구들과 같이 2학년에 올라가야한다″고 고집을 부렸다. 그러자 담임선생님은 나를 데리고 교장선생님 앞으로 가셨다. 교장선생님께서는 밤색 생활한복을 단정하게 차려 입고 안경을 쓰신 근엄한 얼굴이셨다. 전후 사정을 듣고 난 교장선생님께서 나에게 종이와 연필을 주시면서 ‟여기에 학교와 네 이름을 적어보라″고 하셨다. 나는 정성을 다하여 학교와 이름을 써서 드리자, 교장선생님께서 “글씨를 제법 쓰는구나, 그만하면 되었다! 진급시켜줄 터이니 2학년에 가서 열심히 공부해라!” 하셨다. 나는 뛸 듯이 기뻤다.

 그 결과 나는 낙제하지 않고 친구들과 같이 진급하여 뒤떨어진 공부에 열심히 노력하게 되었다. 그때 밤색 생활한복을 입으신 교장선생님의 따뜻한 격려는 늘 내 인생에 자신감을 주었고, 훌륭한 선생님이 되는 꿈을 갖게 하였다. 그 후 나는 그때 교장선생님의 당부를 늘 가슴깊이 새기면서 더욱 학업에 정진할 수 있었다. 덕분에 초중고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여 국립 사범대학과 교육대학원을 졸업하게 되었다. 1973년 교직에 몸담은 지 37년 만에 고등학교 교장으로 명예롭게 퇴직을 하였고, 녹조근정훈장까지 받았다. 가정에서는 『참되고 알차게 살자』는 가훈을 바탕으로 성실하게 살려고 노력해왔고, 자식 3남매들은 모두 의젓한 사회인이 되었다.

 최근 인근 목욕탕 휴게실에서 신문을 보다가 『미츠바(MITZVAH) 생활한복』광고문을 보게 되었다. 첫눈에 지난날 나에게 용기와 자신감을 주신 초등학교 교장선생님께서 입고 계셨든 생활한복과 비슷한 느낌이 확 들어왔다. 주문하여 받아 입어보니 내 몸에 딱 맞고 아주 좋았다. 품위 있는 디자인으로 전통한복의 불편함을 줄이고 현대인들에게 실용성과 평안함을 겸비한 옷으로 실내외에서 다양하게 입을 수 있는 옷이었다. 가격도 전통한복의 비하여 매우 저렴하여 누구나 부담 없이 구입할 수 있는 가격이었다. 생활한복을 입고 경로당에 나가니 모두가 ‟옷이 색상도 좋고 경로당 회장님에게 딱 어울리는 옷„이라고 칭찬이 자자하다.

 사랑하는 친구가 나에게 생일선물로 만들어 준 박꽃3행시『박꽃처럼 활짝 피어/ 종일토록 사랑 주며/근사하게 살아가세』처럼 나는 시골 초가집에 피어난 소박한 박꽃의 향기로 겸손한 자세와 성실한 생활로 사랑을 실천하고 싶다. 앞으로 인생 100세 시대에 그동안 이룬 경륜을 바탕으로 생활한복을 입고 가르치고 배우며 봉사하는 평생교육자의 기쁨으로 보람찬 노후를 멋지게 설계하리라.

                                                                               박종근(전 김천고 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