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락가락하는 장마철에는 평소에 물이 적은 곳에도 폭포를 이룬다 안동 길안에 있는 만휴정을 찾았다 만휴정은 송암폭포 위의 높은 곳에 자리잡아 장마철이 제 격이라는 안내글을 보았다
차에서 내려 200M쯤 걸어 올라가면 송암폭포가 나온다 규모가 꽤 큰 폭포다

  여느 때에는 물이 말라 제대로 폭포 구경을 할 수 없다지만 이 날은 꽤 수량이 있어 제대로 날짜를 맞춘 셈이 되었다 만휴정은 폭포 위쪽에 자리잡았고 계곡을 돌로 만든 다리를 건너야 닿는다

 다리를 건너다 상류 쪽을 보니 그 곳에도 암반에서 미끄러져 내리는 소규모의 폭포와 넓은 소沼가 보인다 만휴정晩休亭은 조선 연산군 시절에 김계행이라는 선비가 지은 정자다 단순히 앉아 쉬는 곳이 아니라 이 곳에서 생활을 한 모양이다

 가운데 마루를 두고 양쪽으로 방을 들인데다 불을 땔 수 있도록 온돌장치를 해 놓았고 그 곁에 밥을 챙겨주는 하인이 머무는 별채도 따로 있다

 마루에 올라 계곡을 내려다 보니 아뿔싸, 담이 너무 높아 계곡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아마 김계행 당시에는 이리 담이 높지 않았을 터인데 못난 후손들이 담장을 복원하면서 경치를 망가뜨려 놓은 모양이다 김계행(1431-1521)은 안동 시람인데 50이 넘어 벼슬길에 나갔다니 상당히 늦깎이다

 연산군 시절, 여러 차례 왕에게 간언을 하였으나 효과가 없자 낙향하여 이 곳에 자리잡고 세상을 잊었다고 한다

 91세까지 장수하였고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에 일찌감치 사망하였으니 연산군이나 왜병에게 험한 꼴 보지 않고 천수를 누리다 간 셈이다

만휴정은 <늙으막에 쉬는 집>이라는 뜻이니 늦게나마 벼슬에 나갔다가 은퇴 후 좋은 산수 즐기며 장수까지 누렸으니 보기 드물게 좋은 팔자를 타고 난 사람이다

지도를 보니 이 곳에서 청송 백석탄이 가까와 다시 차를 달렸다 백석탄白石灘은 '흰 돌이 있는 여울'이라는 뜻이다 개울이나 강이 경사가 급해 소리내어 흐르는 곳을 여울이라 한다

 임하댐으로 흘러드는 길안천을 하류에서 상류로 거슬러 오르다 보면 강 옆에 절벽을 이룬 경승이 여러 곳 나타난다 이 계곡을 신성계곡이라 하는데 백석탄은 그 중 한 부분이다

이 곳 바위가 흰 색을 띄는 것은 석영과 장석이 많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란다

 흰 바위 곁을 푸른 계곡물이 흘러 내리고 거기에다 아랫쪽에는 역암, 사암, 이암 등이 흰 돌과 경계를 이루어 이채롭다 흰 바위에는 군데군데 둥근 구멍이 뚫려 있다 입구에도 pot-hole이라 안내문을 써 두었는데 우리 말로는 돌개구멍이라고 한단다

 섬진강에 있는 장구목에도 요강바위라는 명물이 있는데 여기도 크기만 작을 뿐 군데군데 돌개구멍이 보인다 모래나 자갈이 물과 함께 소용돌이치면서 바위를 마모시켜 생긴 것이라는데 얼마나 오랜 세월이 흘러야 이런 구멍이 뚫릴까? 그래서 예로부터 명소로 이름높았다 한다

최근에는 청송이 국가지질공원으로 지정되었다는데 그 으뜸 공신이 이 곳 백석탄이라 하네

                                                                                   글 이 인구(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