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향의 봄은 복사꽃으로 절정을 이룬다 산마다 들마다 복사꽃이 지천이다 이 좋은 계절에 초등학교 선후배들이 모교 운동장에 모여 체육대회라는 이름을 걸고 하루를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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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구 변호사

  산천은 여전한데 인걸은 간 곳 없다'는 옛 시조가 말해 주듯 초등학교를 졸업한 이후 5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르는 동안 참으로 많은 사람이 곁을 떠나갔다 그래도 아직 옛 친구들이 있고 옆 천막의 낯익은 한 두해 선후배들이 인사를 걸어온다 학교 교정에서 바라보이는 남산은 옛 모습 그대로이다

  나는 잠시 어린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 되었다 그 시절은 누구 할 것없이 가난한 시절이었다 군청에서 제공한 1960년대의 사진들을 보면 동네가 모두 초가집이다 동네에서 한 두 집이 기와집이었다 양조장, 방앗간, 사설 우체국 등을 하던 사람들, 면장댁 등이 부자였고 동네 유지였다

   우리 동네에서 제일 부자는 양조장을 하던 최씨였다 다른 사람들이 자전거도 못 타고 다니던 시절, 그 분은 일제 오토바이를 타고 경쾌한 클락션을 울리면서 동네 길을 지나 다니곤 했다 그 분은 돌아가시고 양조장은 문을 닫아 그 자리에 농협연쇄점이 들어섰다 엄마는 늘 쌀 한 가마 들여놓고 연탄 100장 사 놓으면 부자가 된 기분이라고 하셨다

    그 시절을 생각하면 도시에 집이 있고 차가 있는 현재의 나는 부자인 셈이다 직장을 다니던 친구들은 대부분 퇴직을 하였거나 퇴직을 앞두고 있다 예전 시골에서 농사를 짓는 친구들은 널푼수가 없어 보였는데 이제는 정년이 없는 그들이 모두의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부러울 일도 아니다 정년이 없다는 것은 다른 이가 쉴 때에도 일을 해야한다는 것.
그 당시 내 꿈은 무엇이었을까? 할머니는 날더러 공무원(당시 표현으로는 '면 서기')이 되라고 하신 기억이 난다 고된 농사일보다는 펜을 놀려 먹고 사는 편이 수월하다고 생각하신 모양이다

그 시절에 부모님이 무엇이 되라고 채근한 기억은 없다 시골에서 볼 수 있는 직업은 농부 아니면 공무원이 전부이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외가가 있던 부산에 가면 엄청 번화하였던 기억이 있어 나중에는 대처大處로 나가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어린 마음에도 우리 마을은 평생 살기에는 좁고 답답하다고 느낀 모양이다

  나중에 읍에 있는 중학교, 대구의 고등학교를 거쳐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고 직장을 잡았다가 지방 소도시로 역회전하여 오늘까지 이른 지금에는 내 꿈이 다시 시골가서 사는 것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그것도 당장은 실행하기 어려운 일이다 알량하지만 아직은 사무실을 운영하고 있고 시골에 가더라도 이젠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

   낯익은 것은 산천이지 인걸이 아닌 것이다 그래서 아직은 가끔이나마 시골을 드나들며 간만 보고 있는 셈이다

                                                                                                          이인구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