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구 변호사

  상주에 일이 있어 선배랑 같이 갔다가 점심을 먹고 차를 한잔 하려고 선배가 이끄는 대로 함창으로 갔다
함창은 상주에서 문경으로 가는 길 옆에 표지판이 있어 위치는 알고 있지만 막상 함창으로 갈 일이 없어 한번도 가보지 못한 곳이다  그래도 고교 동기가 함창 출신이 있어 이름은 익히 들었다

카페는 낡은 2층 건물인데 외벽에 낡고 흰 타일이 붙어 있어 예전에 가정집이 아니라 영업점으로 쓰였나 보다 선배의 소개에 의하면 주인장은 중학교 교사 출신이라 하네 외관에 걸맞게 내부 시설도 빈티지(vintage)풍이다

벽장으로 쓰던 곳에도 앉은뱅이 의자를 놓아 두었는데 그냥 보기 좋으라고 둔 것인지 실제로 저 곳으로 기어(?) 들어가 차를 마시는 사람이 있는 것인지 의아했다ㅎㅎ 대추차를 주문하였는데 차맛은 훌륭했다
2층도 구경하라 하여 올라가 보니 예전 방으로 쓰던 곳에다 차를 마실 수 있게 시설을 해 두었네

주인장이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빈 집에 깃들다>라는 책과 <카페 버스정류장>이라는 책을 내었다기에 한 권은 선물받고 한 권은 구입하였다 이 카페 이름이 버스정류장 앞에 있다 하여 <카페 버스정류장>이다
버스정류장은 사람이 모였다가 흩어지는 곳이니 이름이 카페랑 궁합이 잘 맞네

   집에 와서 읽어보니 주인장은 원래 학교 교사를 하다가 연금 받기 직전에 사표를 쓰고 남편을 따라 문경의 봉암사 입구에 있는 <모래실>이라는 곳으로 들어가 농사 짓는 흉내(?)를 내다가 가진 돈이 떨어져 가은읍내에 옷 가게를 내어 운영하였고 다시 함창으로 와서 카페를 차렸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60년생이라 하니 나보다 3살 아래다 2002년에 시골로 왔다니 그녀 나이 43세 때..  교사도 20년을 채우면 죽을 때까지 연금을 받을 수 있는데 18년 조금 넘게 교사생활을 하고 사표를 냈으니 그런 용기(?)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그녀의 책에 <남편으로부터 월급봉투를 받아 본 적이 없다>는 표현이 있는 것으로 보아 남편이 경제적 능력이 있는 사람같지는 않아 보인다

   결국 그녀는 비오는 가을날 술에 취해 자는 남편에게 <앞으로는 서로 좋은 친구로 지내자>는 편지를 써 두고 집을 나와 가은읍내에서 옷 가게를 하였다 한다 두 아이는 도시에 두고 왔으니 다달이 생활비를 보내야 하였을 텐데 시골 수입으로는 이를 감당하기가 어려웠겠지    사람은 뜻이 아무리 좋아도 우선 먹고 살아야 하는데 뒤늦게 수업료를 비싸게 치른 셈이네..

   이 카페는 부산으로 드나들다가 함창 버스정류장 앞에 빈 건물이 있는 것을 보고 <충동적으로> 세 들어 차렸다고 한다 오랫동안 비어 있던 곳이라 집주인은 그녀가 세를 들겠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으로 여겨 싼 값에 세를 얻었다고 한다

   2층은 그림이나 사진의 전시공간으로도 사용되고 있다 가끔 기타를 가지고 와 노래를 하는 가수도 있어 음악회도 열린다고 하네..    카페는 우선 커피맛이 좋아야 하고, 스토리 텔링이 있으면 더 좋고, 그게 아니라면 주인장이 푸근하여야 하는데 3박자가 딱 맞다

게다가 김천에서는 적당한 거리라 드라이브 삼아 가기도 좋다  난 대리석으로 바닥 광을 내고 온통 유리로 도배를 한, 비까번쩍한 찻집에 가면 왠지 그 시설비를 내 호주머니에서 뽑아갈 것 같아 기분이 편하지 못하다

   카페 안에는 그녀가 쓴 책을 비롯해서 심심할 때 보기도 하고 마음에 들면 살 수도 있는 책들이 꽂혀 있어 이 곳은 작은 서점을 겸하기도 한다  벽에는 그녀가 고른 시 귀절이 몇 개 붙어 있고 의외로(?) 버지니아 울프의 사진도 붙어 있네    버지니아 울프는 그 생애만으로도 소설이 된다는 여인인데 어떤 점이 그녀의 취향에 맞았을까?

   좋은 찻집 하나 발견하는 것이 자신이 지지하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는 것보다 행복한 일이라는데 친구들이 날 찾아주면 같이 차나 한잔 하러가세나 

                                                                                                                                                글 <이인구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