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 한 해 나이를 먹다보니 어언 쉰 아홉이 되었는데 이제 한 달만 있으면 6학년으로 진급한다. 아무리 도리질을 하여 보았자 가는 세월을 잡지는 못하니 며칠 간은 우울하였다.

  6학년이 되면 이제는 아저씨가 아니라 할배가 될 판이다 즐겁던 학창시절 다 지나가고/ 이제는 아빠되고 엄마 되었지..라는 노래가 있었는데 이제는 즐겁던 학창 시절 다 지나가고/ 이제는 할배되고 할매되었지..라고 바꾸어 불러야 할 판이다. 돌이켜 보니 학창 시절이 그래도 시간이 마디게 흘렀지 30 이후에는 정말 흐르는 물같이 지나간 세월이다 요즘 <가요무대>라는 프로를 빠짐없이 보고 있는데 노래가 나올 때마다 발표 년도가 나온다. 그러면 그 시기의 공간까지 떠올려진다.

  1974.하면 대구에서 까까머리 고등학생으로 보내던 시절이, 1976. 하면 서울 갓 올라와 어리둥절하던 시기가 떠오른다. 하지만 1990. 김천으로 내려온 이후로는 날마다 하는 일이 꼭같아 그런지 어제가 그제같고 작년이 재작년같아 도무지 시대구분이 되지 않는다. 한 해가 다 갈 무렵이면 묵은 다이어리를 꺼내 보는 버릇이 있는데 그 곳의 주소록을 들여다 보노라면 주소지를 천국으로 옮긴 사람이 참 많다. 해마다 먹는 나이이지만 '아홉'이라는 숫자가 주는 의미가 참 큰 것 같다.

 예전 어른들은 스물아홉에는 장가 들기를 꺼려 하였고 쉰 아홉을 잘 넘겨야 장수반열에 들 수 있다고 하였다. 스물 아홉은 청년에서 장년으로, 쉰 아홉은 장년에서 노년으로 진입하는 과도기라고 본 것이다 그런 과도기에는 신체 변화가 급격해진다. 그러니 스물아홉에는 몸을 많이 쓰게 되는 결혼을 피하라고 하였고 노년의 초입인 쉰 아홉을 무사히 잘 넘기라고 충고하였던 것이다

  같은 속도로 흐르는 세월이지만 과도기에서의 밀도는 다른 셈.물이 99도까지 상승하다가 1도만 더 오르면 끓고, 물 온도가 1도까지 내려 가다가 0도가 되는 순간 얼음이 되는 것과 같다. 예전 고무신이 찢어지면 가죽을 덧대 기웠는데 자주 가죽을 대다 보면 고무신이 어느 순간 가죽신으로 바뀐다. 양적 변화가 질적 변화로 바뀌는 것이다. 이제는 영양섭취도 좋아지고 의료기술이 발달하여 평균수명이 늘어났으니 예전과 평면적으로 비교하기는 힘들겠다.

  하지만 남은 시간이 자꾸만 줄어들고 있다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젊은 날에는 生이 무한정 지속될 것이라는 착각에 사로잡혀 늙음과 죽음이 남의 일로 여겨지지만 이제는 나도 그 대열에서 열외가 될 수 없다는 자각이 사무치게 드는 것이다. 지난 날을 돌이켜 보니 잘한 일 보다는 후회스러운 일이 더 많이 생각난다. 하지만 어느 사람의 말처럼 인생은 후회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 그저 겪어가는 것이다. 무엇을 이루었느냐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때가 되면 다 놓고 가야 할 것이다.

  그저 감방 안 가고 파산 안 하는 것을 다행으로 여기고 세끼 밥이 입으로 들어오는 것이 내 복에 과하다고 생각하며 살아갈 일이다 어제 신문을 보니 눈에 띄는 글귀가 있어 여기에 옮겨 적는다 量大福亦大 機心禍亦深 크게 왕창 한탕 해서 떵떵거리고 사는 것이 좋아보여도 한 순간에 재앙의 기틀을 밟으면 돌이킬 수가 없다